돼지 거점동물병원, ‘경기도 PRRS 청정농장 만들기’에서 청사진을 엿보다
한국돼지수의사회 2026년도 컨퍼런스 개최..미래 돼지수의사 양성 위한 진료환경 개선에 초점
한국돼지수의사회(회장 엄길운)가 9월 3일(목) 대전 계룡스파텔에서 2026년도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이날 컨퍼런스는 거점동물병원, 돼지수의사 양성, 소모성질병 컨설팅사업 개편 등 진료 환경과 제도적 측면에 초점을 맞췄다.
가뜩이나 부족한 돼지수의사 양성 기반은 점차 약화되어 간다. 농장동물 수의사 지망생에 대한 자금 지원, 농장의 진료 계약 의무화 등 경제적·제도적 우위를 보장해가는 선진국의 노력을 국내에도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민관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거점동물병원’에 대해서는 돼지수의사회 내부 논의의 중간 결과가 공개됐다. 민관학 협력의 성공적 모델로 제시된 경기도돼지수의사회의 ‘경기도 PRRS 청정농장 만들기’ 사업도 눈길을 끌었다.

돼지 진료 환경과 관련한 내용에 초점을 맞춘 가운데 회원 의견을 나누는 타운홀 미팅도 진행됐다.
돼지수의사 절벽 눈앞
확실한 경제적·제도적 우위 보장하려는 선진국 벤치마킹해야
경북대 박최규 교수는 “(돼지수의사) 후배가 배출되지 않는 환경이 너무 빨리 다가왔다”며 “청년 돼지수의사 인력 공급의 절벽으로 10년 뒤면 돼지수의사 임상 생태계가 궤멸될 지경”이라고 우려했다.
반려동물 임상 대비 열악한 근무환경과 보수는 여전한 데다 수의과대학에도 양돈 분야를 가르칠 교수가 거의 사라져간다는 것이다.
이날 헤리티지 세션을 진행한 강원대 한정희 교수를 비롯해 건국대 류영수 교수, 박최규 교수까지 이미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두고 있다. 가뜩이나 수의대생들이 돼지를 접할 기회도 극히 부족한데 대학별 편차도 심하다. 돼지를 가르칠 교수도 없고, 돼지를 진료하는 대학 동물병원도 없다면 돼지수의사의 안정적인 양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박 교수는 “(수의대생들이) 이미 진로를 결정한 본과 4학년 2학기가 되어서야 돼지를 처음 본다”면서 “열악한 처우가 근본 원인인데 관련 대책은 딴 방향으로 흐른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미국과 일본이 교육 강화는 물론 학자금 지원과 같은 확실한 금전적 이득이나 농장 진료를 의무화하는 제도를 통해 지위를 보장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는 점을 지목했다.
미국 농무부(USDA)는 농장동물 수의사 부족 지역에서 3년 이상 근무하는 것을 조건으로 7만 5천 달러(1억 원 상당)까지 학자금을 지원하는 ‘수의학 학자금 상환 프로그램(VMLRP)’을 운영한다(본지 2025년 9월 4일자 ‘농장동물·공공 수의서비스 부족’ 수의사 1인당 1억 3천만 원 지원하는 美 참고). 일본은 축산농가가 전담 주치의 개념의 ‘농장관리 수의사’를 두도록 의무화하여, 질병을 상시 예찰·예방하면서 농장동물 수의사가 안정적인 수입 기반을 갖출 수 있도록 뒷받침하고 있다.
박 교수는 “사명감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힘든 만큼 반려동물 수의사 대비 확실한 보수와 경제적·제도적 우위를 보장하겠다는 것이 선진국의 접근”이라며 한국도 이를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소수의 농장동물 수의사 지망생에게는 장학금을 지급하고, 제대로 교육할 수 있는 최소한의 교수진과 협력 교육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전반적인 대책을 정부가 마련해야 한다는 점도 지목했다.
돼지수의사회 자문교수단 단장을 맡고 있는 박최규 교수는 “돼지수의사회 내부에서 동력을 만들어야 한다”며 후진 양성과 진료시스템 개편 등에 대한 돼지수의사회 안을 만들어가겠다고 덧붙였다.


돼지에서의 거점동물병원은…농장 내부 방역·공중위생에 초점?
소 구제역 백신과 같은 지원사업 제안도 눈길
무너져가는 농장동물 임상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최근 농식품부와 수의사회가 논의하고 있는 대책이 ‘거점동물병원’이다.
지역별로 수의사 다수가 모인 거점동물병원을 만들거나 지정해, 고도화된 정밀진단 인프라를 바탕으로 더 나은 진료를 제공하고, 규모를 바탕으로 청년수의사를 양성하며, 점차 민간으로 이양될 정부 방역사업을 담당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날 돼지수의사회 김무열 농장수의제도위원장은 돼지를 진료하는 거점동물병원의 역할과 정부 지원 방향을 제안했다.
양돈 생산성을 위협하는 질병에 대응하기 위한 농장 내부 방역을 지도하고, 재난형 가축전염병 방역과 공중위생에서의 역할에 초점을 맞췄다.
김무열 위원장은 “소에서는 거점동물병원의 목표가 진료일 수 있지만, 돼지에서는 공중위생과 방역이 우선이어야 할 것”이라며 농장 생산성 문제의 주범인 후보돈 순치, 돼지유행성설사병(PED) 대응을 위한 출하대 관리 등을 거점동물병원의 역할로 제시했다.
공중위생 측면에서는 항생제 사용량·내성 문제를 지목했다. 김 위원장은 “수의사처방제를 도입했지만 항생제 사용량은 더 늘었다. 농장별·모돈 두수별로 적정한 사용량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지표도 없다”며 이에 대한 모니터링을 거점동물병원 수의사가 담당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1종 법정 가축전염병에 대한 백신 접종 지원사업 제안도 눈길을 끌었다. 구제역 백신 등 방역상 주요한 백신의 모돈 접종을 거점동물병원 수의사가 담당하면서 농장 대면 진료, 청년수의사의 수련 계기를 만들자는 것이다.
농장이 거점동물병원의 진료를 받게 하는 유인책으로는 각종 지자체 지원금이나 관납 약품, 살처분 보상금 상의 이익 등을 아이디어로 제시했다.

경기도 PRRS 청정농장 만들기 사업, 민관학 협력 모델로 눈길
어떤 일을 하는 ‘거점’인지가 중요하다
‘지역 단위로 주요 질병을 상시 관리하는 권역 플랫폼’
이날 컨퍼런스에서는 거점동물병원, 농장전담수의사 제도 모두 ‘농가가 원해야 도입될 수 있다’는 점이 거듭 지적됐다. 그 모델로 경기도돼지수의사회의 ‘경기도 PRRS(돼지생식기호흡기증후군) 청정농장 만들기’ 사업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올해 경기도의 주민참여예산사업으로 도입된 이번 사업에는 경기도와 이천시, 지역 한돈협회와 경기도돼지수의사회 회원 자문단과 전북대 김원일 교수팀이 협력하고 있다. 민·관 공감대 속에 1년 넘는 준비작업을 들여 지원사업으로 선정됐다.
이날 경과를 소개한 피엠씨동물병원 김현주 원장(경기도돼지수의사회 사무국장)은 “농장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업”이라며 “서로 각자의 동물병원을 운영하면서도 (지역단위 PRRS 관리의) 큰 목표를 두고 하나의 자문단을 형성하고, 관에서 이를 인정한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올해 첫 사업에는 이천의 40개 농장이 참여했다. 자문단 돼지수의사가 연 4회 농장을 방문하고, 상·하반기에 두 차례에 걸쳐 정밀검사를 벌인다. 항원 양성 시 유전자 분석까지 진행한다.
상반기 첫 검사에서는 90%에 달하는 항원 양성률을 보였다. 돼지를 전문적으로 진료하는 수의사가 제대로 시료를 확보한 덕분이다.
김 원장은 “수의사도 자꾸 한 농장만을 보고 이야기하려다 보니 ‘돌팔이’ 소리를 듣는다. 큰 그림을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고병원성 PRRS를 비롯해 다양한 유전형의 바이러스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떤 바이러스가 개별 농장에 실질적 피해를 일으키는지 분석·예측하려면 이번 사업과 같은 실질적인 지역단위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현주 원장은 “결국 어떤 활동의 중심이 되는 지점이 ‘거점’”이라며 “새 동물병원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분산되어 있는 역할을 연결해 지역의 주요 질병을 상시 관리하는 권역화된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돼지 진료에서의 거점동물병원은 건물의 위치가 아니라 진료·진단·농장 방역 개선의 피드백 역할을 수행하는 기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다.


전북 규제자유특구, 내년 PRRS 자가백신 시범 도입
농장 진료하는 수의사-실험실-자가백신-수의사로 환류하는 ‘주치의 콘셉트’
분석을 담당한 김원일 교수도 “양성률이 90%에 달하면서 예산 측면의 문제는 생겼지만, 일선 원장이 어떻게 샘플링 하느냐에 따라 매우 효과적인 모니터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했다”며 “이 같은 방식의 거점동물병원 역할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상반기 모니터링에서 김원일 교수팀이 ORF5 유전자를 분석한 북미형 PRRS 35건 중 23건(65%)이 고병원성 PRRS로 확인됐다. 이들 대부분이 95% 이상의 유전적 상동성을 보여 급속 전파를 방증했다. 유전자 분석 결과에 인공지능을 적용해 도출한 추정 전파 모델을 소개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유전자 분석과 인공지능에 더해 수의사들이 현장의 정보들을 종합해 판단을 내려야 한다. 그러한 주치의 체계가 되어야 질병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다”면서 진단 이후의 치료 측면에서도 변화를 예고했다.
전북 차세대 동물의약품 규제자유특구를 활용해 내년부터 PRRS에 대한 자가백신을 시범 도입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아직 전 세계적으로 PRRS 백신의 작동 원리가 명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상동성이 높아야 방어 효과가 높다’는 정도는 안다”면서 100% 상동성을 담보할 수 있는 자가백신이 PRRS 대응에 효과적일 것으로 기대했다.
‘경기도 PRRS 청정농장 만들기’ 사업과 같이 역량 있는 돼지수의사가 농장에서 변이하는 바이러스를 확실하게 검출할 수 있도록 샘플링하고, 이를 유전자 분석과 자가백신 제조로 이어가면, 다시 수의사가 자가백신을 포함시킨 백신 프로그램을 관리하면서 농장을 ‘치료’하는 방식이다.
김원일 교수는 “농장 주치의(농장전담수의사)라는 제도는 만들지 못하더라도, 그러한 콘셉트를 따르는 질병관리 체계를 만들어가고자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