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유기동물 문제를 동물병원 진료비 탓으로 돌리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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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비가 비싸니 아예 반려동물을 버려 버린다’

도대체 어디서 시작됐는지 모를 괴담이다. 그런데도 국회 입법을 보조하는 공식기관의 보고서에까지 등장할 정도로 광범위하게 퍼졌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달 발간한 제21대 국회 주요 입법·정책 현안 보고서에는 ‘반려동물보험 활성화를 위한 인프라 조성’ 과제가 포함됐다. 소비자들이 진료비 부담을 많이 느끼고 있으니 진료항목을 표준화하고 사전고지제, 공시제를 도입하자는 내용이다. 정부는 밀어 부치고 수의사는 반대하는, 별반 새로울 것도 없는 얘기다.

그런데 보고서의 현황 분석이 눈에 띈다. ‘반려동물에 대한 치료비용 부담으로 유기동물이 증가하는 등 사회적 문제가 대두되고 있어’ 해결책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유기동물 관리를 위해 예산이 많이 들어간다 → 유기동물은 동물병원 진료비가 비싸서 늘어난다 → 진료비를 싸게 만들면 유기동물이 줄어든다 → 유기동물 관리예산도 줄일 수 있다’는 식이다.

동물 진료비를 싸게 만드는 제도 도입의 편익을 유기동물 관리예산의 저감에서 찾는다니, 창조경제란 이런 것을 두고 생긴 말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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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아는 한, 국내에서 반려동물을 버리다 적발된 범법자들을 대상으로 왜 버렸는지를 조사한 연구는 없다.

하다못해 유기동물들의 건강상태를 조사한 연구도 찾기 어렵다. 간혹 특정 지역 유기동물보호소를 대상으로 심장사상충 감염 양상을 조사한 결과가 발표되는 정도에 그친다.

보호소에 있는 유기동물들이 아파서 버려졌는지, 실제로 아프긴 한 건지 잘 모른다는 얘기다. 진료비가 부담돼 버려졌는지도 알 길이 없다.

대신 간접적이긴 하지만, 유기동물들의 나이로 가늠해볼 수는 있다. 소유주가 부담을 느낄 정도의 진료비는 대부분 중증질환으로 야기되고, 대부분의 중증질환은 노령화된 이후에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SBS가 2010년부터 2017년 7월까지 국내 발생한 유기견 58만여마리의 통계를 분석한 결과, 7년령 이상의 노령견은 8.9%에 불과했다.

반면 5년령 이하의 어린 유기견이 88.5%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처럼 어린 강아지들이 진료비 부담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아파서 버려졌다? 그런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다.

설령 정말 진료비 부담 때문에 버렸다 하더라도, 유기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

유기동물의 절반은 보호소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9년 발생한 유기동물의 51.2%가 새 삶을 찾지 못하고 사망했다(안락사 26.4%, 자연사 24.8%).

정부나 동물보호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유기동물보호소의 평균 보호기간은 30~40일이다.

결국 동물을 버리는 행위는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오면 한 달 내로 죽는다’고 데스노트에 적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오히려 동물병원에서는 암이나 만성질환이라 해도 심각한 말기가 아니라면 ‘앞으로 한 달도 버티기 어렵습니다’는 예후 판정이 나올 일이 흔치 않다.

한 달 안에 50% 확률로 사망하는 ‘치명적인 질병’을 준 것은 반려동물을 버린 소유주인데, 왜 동물병원이 대신 화살을 맞아야 하는지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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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동물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2014년 연간 8만여마리였던 유기동물 발생량은 지난해 13만5,791마리까지 꾸준히 증가했다. 반려동물 진료비에 대한 소비자 부담이 문제로 지목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단순히 ‘동물병원이 원흉’이라는 식의 악당 만들기로는 두 문제 모두 해결할 수 없다.

치료비 부담으로 유기동물이 증가한다고 주장하려면, 적어도 유기동물이 발생하는 원인이나 그들의 건강 상태에 대한 근거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 동물등록제 내장형 일원화 등 유기행위를 적발할 수 있는 제도적인 보완이 전제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사설] 유기동물 문제를 동물병원 진료비 탓으로 돌리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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