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 to the Future』
여기 두 명의 수의사가 있습니다. 한 사람은 이제 막 출발선에 섰고, 다른 한 사람은 그 길을 꽤 걸어왔습니다.
먼저 길을 걸어온 수의사는 뒤를 돌아보며 말합니다. 그 길 위에서 수많은 풍경을 보았다고.
이제 출발하는 수의사는 그 발자국을 따라 걸어갑니다. 하지만 그 역시, 자신만의 새로운 풍경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Vet to the Future』는 비슷해 보이지만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수의사들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먼저 걸어간 수의사에게서는 길 위에서 얻은 지혜를, 이제 길을 나서는 수의사에게서는 앞으로의 미래를 듣습니다.
경험과 가능성이 교차하는 그 길 위의 이야기를, 13기 데일리벳 학생기자단이 전합니다.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현장에는 수의사가 함께 있습니다. 한반도의 자연에서 살다 다친 동물도, 공·항만에서 밀수되려다 적발된 동물도, 가정이나 동물 카페에서 기르다 버려진 동물도 수의사의 손길 앞으로 옵니다.
13기 데일리벳 학생기자단이 야생동물을 보전하고 복원하기 위해 노력하는 OB와 YB 수의사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국립생태원에서 12년 간 야생동물 질병 연구와 보호 업무를 맡아 온 이혜림 수의사(OB)와 국립공원야생생물보전원 중부보전센터에서 붉은 여우를 복원하고 있는 4년차 신은빈 수의사(YB)를 차례로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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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가 이 땅의 당연한 이웃이 되는 날까지”
흐트러진 생태계의 고리를 다시 잇고 지속 가능한 공존을 모색하는 보전의학
국립공원야생생물보전원 중부보전센터는 백두대간의 생태계 건강성 회복을 위해 반달가슴곰, 산양 등 주요 멸종위기종의 증식과 복원을 전담하는 국가 기관입니다. 그중 2010년 소백산국립공원을 거점으로 시작된 여우 복원 사업은 한반도 야생에서 자취를 감춘 개체군을 안정적으로 재정착시키는 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복원 대상인 ‘붉은 여우(Red Fox)’는 본래 민가와 인접한 야산이나 저지대에 서식하며 생태계의 허리를 지탱하던 중간 포식자였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유해조수 구제 사업을 시작으로 1960년대 쥐잡기 운동에 따른 2차 독성 중독, 도시화로 인한 서식지 파괴가 겹치며 야생에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현재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으로 보호받고 있습니다.
외국 개체 도입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 증식 기술’을 정립해 온 센터의 노력은 매년 30마리 이상의 새끼 여우 배출이라는 결실로 이어졌습니다. 소백산 권역을 중심으로 스스로 대를 잇는 생태적 자립을 구현하겠다는 목표 아래, 2025년 말 기준 약 100여 마리의 여우가 전국 야생에 안착해 생태계 구성원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이러한 복원의 긴 여정 중심에는 동물의 숫자를 늘리는 것에서 나아가, 상처 입은 하나의 개체를 온전한 환자로 대하는 수의사의 진료실이 있습니다. 야생동물 고유의 삶을 존중하면서도 필요한 의학적 조치를 다하려는 그의 사려 깊은 고민은 보전 현장의 중요한 밑거름이 됩니다.
중부보전센터에서 여우의 생태적 자립과 인간과의 공존을 위해 힘쓰고 있는 신은빈 책임연구원을 만나, 진료대 위에서 마주해 온 현실과 과제에 대한 이야기를 청해 들었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현재 중부보전센터에서 맡고 있는 업무도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국립공원야생생물보전원 중부보전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는 4년 차 책임연구원, 수의사 신은빈입니다.
저는 현재 시설 내부와 야생 서식지에 계류하는 여우들에 대한 질병 관리부터 구조 및 치료, 폐사 개체에 대한 부검 등 센터 내 전반적인 수의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진료실에서 사용하는 약품과 임상 의료 장비 관리까지 함께 담당하고 있어요.
방사를 목적으로 개체를 관리하는 만큼, 보전센터만의 특수한 수의학적 프로토콜이 있을 것 같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역시 ‘방사’라는 최종 목표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입니다. 그러다 보니 개체 관리부터 이원화해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노령이거나 다리 절단 등으로 야생 복귀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된 영구 계류 개체들은 경사도가 낮고 탐방 프로그램을 통해 일반인도 만날 수 있는 ‘생태학습장’에서 보호하는 반면, 방사 예정 개체들은 사람과의 접촉을 차단한 산 중턱의 ‘자연적응장’에서 관리하죠.
방사는 매년 여름에 한 번 진행됩니다. 방사일이 다가오면 여우들이 야생에서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사냥 본능을 깨워주는 ‘먹이 풍부화’ 단계를 거칩니다. 기존에 주던 보조 먹이 대신 살아있는 생먹이 등 다양한 먹이원을 미리 접하게 하면서 자연스럽게 적응력을 길러줍니다.
센터 내의 자체 증식도 중요한 축입니다. 젊고 건강한 야생 개체군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죠. 겨울이 오면 개체 간의 성향이나 이전 번식 기록을 세밀하게 분석해서 열 쌍 정도를 매칭해요. 1:1 또는 다수 합사를 통해 교미를 유도하는데, 자연 번식에 실패한 개체들을 대상으로는 유전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정액 수집이나 인공수정 연구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고려하는 것은 야생 생태계의 건강성입니다. 야생으로 나가는 개체들이 질병 전파의 매개체가 되면 안 되기 때문에, 방사 직전에는 모든 개체를 전신 마취한 뒤 질병 스크리닝을 진행합니다. 주요 감염성 질병에 대해 간이 키트와 PCR 검사를 실시해서 개체 자체의 건강뿐 아니라 생태계 교란 가능성까지 확인하고 있습니다.
여우는 야생성이 강해요. 순치된 개체가 거의 없고 이빨도 날카롭죠. 센터 내의 모든 진료와 처치는 상호 안전을 위해 마취 하에 진행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야생으로 돌려보낼’ 동물을 진료할 때, 현장에서 수의사로서 가장 엄격하게 지키는 원칙이나 가치관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의학적으로 판단하는 최선의 치료법보다, ‘동물의 입장에서 가장 최선인 상황’을 우선시하려고 노력합니다.
반려동물은 매일 소독하고 약을 바르는 통원 치료가 가능하죠. 치료의 목적 자체가 사람과 건강하게 오래오래 함께 살아가는 데 있으니까요. 하지만 야생동물은 상황이 다릅니다. 가벼운 처치 하나를 하려고 해도 전신 마취나 강도 높은 보정이 필수적이거든요.
예를 들어 발바닥 패드가 찢어졌다면, 반려동물이라면 완전히 나을 때까지 입원시키고 붕대 처치를 반복하겠죠. 그런데 야생동물에게 이런 반복적인 처치는 극심한 스트레스 자극이 돼요. 도리어 치료 행위 자체가 동물에게 더 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위험이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의학적인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이 개체에게 도리어 무리한 개입이 되지는 않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됩니다. 그 적절한 타협점과 기준선을 잡는 일은 여전히 어려운 과제입니다.

‘수의학의 여러 갈래 중 ‘야생동물 보전의학’을 진로로 선택하신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어떤 거창한 운명이나 극적인 사건이 있어서 처음부터 이 길을 결정했던 건 아니었어요. 그저 막연히 야생동물 수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수의대에 진학했고, 학부 시절 관련 실습과 봉사를 찾아다녔죠.
그러다 본과 때 중부보전센터로 2주간 자원봉사를 오게 되면서 붉은여우라는 종과 복원 사업을 처음 접하게 됐습니다. 졸업 후 이곳에 정식으로 입사하며 이 분야의 매력을 깊이 체감하게 된 것 같아요.
특히 여우라는 종이 저에게 준 울림이 컸습니다. 센터에서 함께 복원 중인 반달가슴곰이나 산양은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기준으로도 ‘취약종’에 속하는 멸종위기동물입니다. 반면 붉은여우는 전 세계적으로는 개체 수가 워낙 많아서 관심도가 낮은 ‘관심대상’ 등급으로 분류돼요.
다른 나라에서는 사냥 기간을 정해 개체 수를 조절할 만큼 적응력과 생존력이 뛰어난 동물인데, 유독 한반도에서만 인간의 활동에 의해 절멸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이 무척 부자연스럽고 강렬하게 다가왔어요.
사실 야생동물과는 ‘여기 선 넘지 말고 공간을 분리해 살자’고 말로 합의할 수 없습니다. 결국은 한 땅에서 부딪히며 살아가는 법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특히 여우는 환경에 맞춰 무엇이든 잘 먹는 ‘기회적 포식자(Opportunistic predator)’라 인간의 서식지와 쉽게 겹치고, 농작물이나 가축 피해 같은 갈등이 필연적으로 발생합니다. 이 접점에서 마찰을 최소화하고 공존의 방향성을 찾아주는 중재자가 바로 야생동물 수의사라고 생각해요.
인간의 개입으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만큼 커다란 생태계적 사고가 터졌을 때,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 그것을 다시 ‘자연스러운 상태’로 되돌려놓는 것. 인위적으로 훼손된 생태계의 고리를 다시 자연스럽게 연결해 나가는 과정이 제가 느끼는 보전의학의 매력입니다.
센터에 입사하시기 전, 로컬 2차 동물병원에서 인턴으로 1년간 근무하신 이력이 눈에 띕니다.
사실 학부 시절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대학병원 로테이션 실습이 꽤 제한적이었어요. 그래서 졸업 후 당장 현장에 투입되었을 때 마주할 실무적 미숙함에 대한 두려움이 컸습니다.
늘 야생동물 수의사만을 꿈꿔왔기에 다른 분야를 거쳐 가는 동안 혹시 뒤처지지는 않을까 걱정도 됐지만, ‘딱 1년만 집중해서 기초를 배워보자’는 생각으로 2차 병원 인턴십을 선택했습니다. 야생동물 임상에 한 번 발을 들이면 소동물 임상을 경험할 기회는 영영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결과적으로 그때의 1년은 실무 공백을 집약적으로 메워준 소중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복원하고 있는 여우가 ‘개과 동물’이라는 점이 가장 큰 교집합이었죠. 여우의 질병 치료와 약물 운용, 의료 장비 적용의 대다수는 개의 임상 표준에 준해서 이루어지거든요. 24시간 긴박하게 돌아가는 2차 병원에서 겪었던 전신 마취와 외과 수술, 응급 대처, 그리고 전염성 질병 관리 기법들은 지금 여우를 진료하는 제 실무에 녹아들어 있습니다.
치료 외적인 부분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외부 기관에 질병 검사를 의뢰하는 프로토콜이나 약품 및 소모품 관리 등 학교가 아닌 실제 임상 현장에서만 체득할 수 있는 행정적 실무를 그때 익힌 덕분입니다.
만약 다시 졸업 시점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저는 똑같이 반려동물 임상 경험을 먼저 쌓는 길을 선택할 것 같아요. 그때 치열하게 보낸 시간이 여우 수의사로서 나아가는 데에 든든한 밑거름이 되어주고 있으니까요.
현장에서 실무를 수행하시며 느끼는 가장 큰 보람과, 반대로 현실적인 아쉬움이나 한계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역시 입원했던 여우들이 건강하게 퇴원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껴요. 특히 야생에서 질병이나 부상으로 어렵게 구조된 개체들을 잘 치료해서 다시 내보내는 날이 수의사로서 가장 기분 좋은 날입니다. 방사된 여우가 뒤도 안 돌아보고 힘차게 뛰어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거나, 위치 추적 장치를 통해 서식지에 잘 안착한 신호를 확인할 때 이 일의 가치를 다시금 깨닫곤 합니다.
반면 인간과의 갈등 속에서 상처 입은 개체들을 다시 마주할 때는 마음 한 편이 다소 무거워집니다. 농작물이나 가축 피해를 막기 위해 설치하는 덫이나 농약 같은 대응책들은 야생동물에게 예기치 못한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지난 여름 한 달간 정성껏 개선충을 치료해 방사했던 개체가 불과 두 달 만에 불법 덫(창애)에 걸렸어요. 다리가 심하게 손상되어 결국 절단해야 했죠. 농작물 피해를 막으려 살포한 농약으로 인해 위장에 천공이 생겨 폐사한 여우를 부검해야 했을 때도 있었습니다.
농민분들 역시 이러한 방법들이 동물에게 큰 상처를 입힐 수 있다는 점을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당장의 생업을 지키기 위한 현실적인 대처법으로 선택하게 되는 것이죠.
이처럼 개인이나 센터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인 갈등을 마주할 때마다, 야생동물 수의사로서 현장에서 안타까움을 느끼는 동시에 더 깊은 사회적 고민을 안게 됩니다.
‘개별 생명의 안위’와 ‘종 복원이라는 거시적 목적’ 사이에서 오는 딜레마도 깊을 것 같습니다.
센터에서는 증식에 성공한 여우들을 매년 야생으로 돌려보내고 있습니다. 마지막 진료 때 발신기를 달아주면서 “다시 보지 말자”고 인사해요. 펜스 안을 떠나 넓은 야생에 적응해서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유롭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서 하는 말이에요.
하지만 한 마리 한 마리 소중하게 키워낸 아이들이 막상 밖으로 나가면 민가 주변을 서성거리다 크고 작은 갈등을 빚기도 합니다. 사람의 거주지와 서식지가 겹치다 보니, 먹거리가 풍부하고 흥미로운 인간의 공간으로 이끌리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러다 보면 일부 개체의 행동 때문에 복원 사업 자체에 대한 회의론이나 종 전체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생겨나기도 해요. 여우 복원 사업에서 민가 피해 관리와 갈등 대응에 유독 무게가 실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안쓰러운 순간은, 여우가 반복적으로 문제를 일으킨다는 이유로 어렵게 적응한 터전에서 멀리 이주되거나 다시 시설로 회수될 때입니다. 사실 여우는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의 호불호를 떠나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게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웠던 동물이었어요. 그럼에도 복원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대중에게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것 또한 중요하기 때문에, 개체의 자유를 일부 제한하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을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멸종위기종 복원의 진정한 완성은 동물의 수를 늘리는 기술에서 나아가, 사회적 인식의 개선과 공존의 문화를 형성하는 데 있다고 봅니다. 저 역시 아직 센터 밖에서는 야생 여우와 마주친 적이 없을 만큼, 이들은 여전히 조심스럽게 한반도의 생태계에 발을 내딛는 중입니다. 그러니 혹시라도 여우와 마주치게 되는 분들 그 우연한 만남을 조금 더 너른 시선과 포용력으로 바라봐 주시기를 기대해 봅니다.

연구원, 재활관리사 등 다양한 직군과의 협업이 필수적인 환경에서, 수의사로서 소통 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내가 아는 지식에만 갇히지 않되, 수의사로서의 중심과 기준은 항상 단단하게 유지하는 것이에요. 센터에는 풍부한 경력과 연륜을 지닌 연구원분들이 많아서,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함께 일하며 정말 많은 것을 배웁니다.
하지만 협업을 하다 보면 서로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때도 분명히 생겨요. 특히 국립공원 조직의 특성상 수의사의 수가 매우 적은 편입니다. 상대의 전문성을 존중하며 수용할 점은 유연하게 받아들이되, 수의사로서 지켜야 할 의학적 견해만큼은 확실하게 피력할 줄 알아야 해요.
앞으로 보전의학 분야에서 새롭게 도전하거나 더 깊이 파고들고 싶은 연구원님의 최종 목표가 궁금합니다.
가장 자주 마주한 야생동물이 여우이다 보니 정도 관심도 훨씬 많이 가요. 해외의 많은 나라에서는 여우가 길고양이나 비둘기처럼 도심과 자연 어디에나 존재하는 아주 흔한 야생동물이거든요. 머지않은 미래에는 한반도의 붉은여우도 우리 곁에 그렇게 당연하고 흔한 존재로 돌아와 있기를, 그리고 그 여정에 제 노력이 녹아 있기를 바라는 개인적인 꿈이 있습니다.
현재 중부보전센터는 수많은 여우를 일상적으로 진료하고 관찰할 수 있는, 전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은 연구 환경이에요. 이곳에서 축적되는 유전적 정보와 임상 데이터는 수의학적으로는 물론, 복원 사업을 뒷받침하는 데에도 정말 귀한 자산입니다. 그래서 이 기관만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살려, 한국 붉은여우의 해부학적 구조와 생리적 특성을 정밀한 수치와 문서로 아카이빙하는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나아가 여우 복원 사업이 안정적으로 궤도에 오를 수 있도록 질병 관리와 치료에 관한 표준 수의학 프로토콜을 정립하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학술적 기틀을 세우는 일이 여우가 이 땅의 평범한 이웃으로 자리잡아 사람과 여우가 온전히 공존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이정표가 되리라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진로를 고민하며 저마다의 길을 찾아가고 있는 수의대 후배들에게 현직자로서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저는 ‘대학생’이라는 신분이 어디든 스며들 수 있는 가장 무궁무진한 만능 열쇠라고 생각해요. 막상 졸업해서 면허를 가진 수의사가 되고 나면, 현실적으로 단기간에 여러 기관을 돌며 순수한 실습생으로서 경험을 쌓기가 정말 어려워지거든요. 하지만 학생 때라면 본인이 경험해보고 싶은 분야와 기관을 정해 문을 두드리는 만큼, 어떻게든 기회의 길이 열립니다.
야생동물 분야에 관심이 있다면 생각보다 선택지도 넓어요. 저희 보전원만 보더라도 제가 있는 여우 복원의 중부보전센터뿐만 아니라, 산양 생태축 복원을 전담하는 ‘북부보전센터’, 반달가슴곰 복원과 야생동물 질병 진단의 중심축인 ‘야생동물의료센터’, 그리고 최근 사육 곰의 구조와 관리를 담당하게 된 ‘사육곰보호센터’까지 다양한 곳에서 수의사들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선배 수의사가 학부생 시절 마주했던 현장의 기억을 나침반 삼아 이 길을 선택했어요. 그렇기에 관심을 두고 찾아오는 후배들에게 저희는 언제나 문을 활짝 열어두고 있습니다. 꼭 이곳이 아니더라도,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하며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후배를 싫어하거나 마다할 선배는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조금 두렵고 막막하더라도 용기를 내어 시야를 넓히고, 본인만의 소중한 경험을 차근차근 쌓아가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공통 질문] 10년 뒤 현장에 있을 ‘미래의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한마디 남겨주신다면요?
지금의 나는 당장의 아쉬움은 남더라도 깊게 후회까지 남길 일은 없도록 매순간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그러니 미래의 나는 야생동물과 함께하기만을 꿈꿨던 어린 시절의 제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어 달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국립생태원 이혜림 수의사와 만나는 2부(보러가기)로 이어집니다. <편집자주>
김민지 기자 jenny03070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