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으로 치달은 건국대 동물병원, 3월부터 초유의 진료 마비 사태

임상과목 대학원생 전부 병원서 퇴출..수의대 재학생 로테이션 실습도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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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장을 둘러싼 내부갈등과 진료참여인력 인건비 미지급으로 얼룩진 건국대학교 부속 동물병원이 결국 파국을 맞이했다.

복수의 건국대 동물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3월 1일부터 임상과목 대학원생 전원이 병원진료에서 퇴출되면서 동물병원은 사실상 마비된 상태다.

대학원생 없이 혼자 남은 건국대 수의대 임상과목 교수진의 진료는 일부 재진을 제외하면 모두 취소됐다. 따로 동물병원과 계약하는 임상전담교수와 비(非)대학원생 봉직수의사를 합쳐 9명만 남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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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페이 사태가 병원 마비로 ‘나비효과’..일방적 TO 감축, ‘병원 문 닫으라는 소리’

이번 사태는 지난해 하반기 건국대 동물병원 대학원생 수의사의 열정페이 문제가 매스컴을 타면서 시작됐다. 진료에 참여하는 대학원생이 전혀 급여를 받지 못하거나 장학금조로 월 60만원 정도를 받는데 그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법노동 문제가 대두됐다.

건대 동물병원의 모 관계자는 “당시 지방고용노동청이 감사에 돌입하면서 곧 미지급된 인건비를 지불해야 될 형편”이라고 말했다. 그 액수만 적게는 8억원에서 최대 15억원에 이를 것이란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이처럼 인건비 문제로 홍역에 걸린 건국대 동물병원은 ‘최저임금 이상의 급여를 받는 인력만 진료에 참여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 인원수가 문제가 됐다.

건국대 동물병원은 대학 본부 직속기관으로, 진료배정인원도 본부가 결정한다. 그런데 지난달 본부가 3월부터 적용되는 올해 1학기 진료인원수를 단 16명으로 통보했다는 것이다. 16명에 아직 계약기간이 남은 임상전담교수와 봉직수의사가 포함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교수당 1명을 배정받기도 빠듯한 숫자다.

또다른 병원 관계자는 “당초 대학원생을 포함한 건대 동물병원 수의사가 70여명에 달하는데, 16명은 진료를 제대로 보기에 턱없이 부족한 숫자”라며 “본부가 ‘동물병원은 문을 닫아도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나올 수 없는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이들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달 병원 측이 ‘TO를 적어도 32명까지는 늘려 달라’고 호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야기되던 16명보다 줄어든 9명으로 진료배정인원이 결정됐다.

결국 3월초로 예약됐던 진료와 수술은 모두 취소하고, 대학병원에서 ‘지역병원을 알아보라’고 안내하는 웃지 못할 사태가 벌어졌다. 대학원생들은 병원 내 의국에서 짐을 뺐고, 수술실의 불은 3월 1일 이후로 켜지지 않았다.


교수 간 갈등이 근본원인” 지적도..피해는 환자와 학생들에게

초유의 대학 동물병원 마비사태의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와 학생들에게 전가되고 있다.

건대 동물병원 진료진이었던 모 관계자는 “10여명의 계약직 수의사로는 초진은 고사하고 기존 환자들에 대한 재진조차 제대로 보기 어렵다”며 “결국 초진은 취소하고 재진은 미룰 수 밖에 없는데 환자 보호자들의 불만도 크다”고 토로했다.

대학 동물병원이 담당하던 교육·수련 기능도 정지됐다.

당초 건국대 수의대 본과4학년의 임상로테이션 실습교과과정이 절반은 건국대 동물병원에서, 나머지 절반은 외부 협력병원 9개소에서 나누어 진행됐다. 하지만 건국대 동물병원의 진료가 마비되자 학생들의 실습교육도 불가능해진 것이다.

건국대 수의대 관계자는 “이번 학기 본과4학년 실습과정은 모두 외부 협력병원에서만 진행하기로 결정됐다”고 전했다. 재학생으로서는 같은 등록금을 내고도 지난해에 비해 퇴보한 실습교육을 받는 셈이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다수의 관계자들은 사태의 근본원인으로 ‘교수 간 갈등’을 공통적으로 지목했다.

동물병원장 인선과 대학원생 진료참여 문제, 진료배정인원 TO배분 등을 놓고 교수진 내부갈등이 격화되면서 관련 문제가 외부로 비화됐고, 결국 부작용을 최소화하며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임상과목 대학원생들의 진료참여인원이 제한될 것이었다면 애초에 적게 뽑았어야 하는데, 일단 뽑아 놓고 진료는 못 보게 하니 문제가 생긴다는 얘기다.

당장 이번 달 입학한 1년차 임상과목 대학원생들은 병원이 아닌 실험실로 출근도장을 찍거나, 일부는 아예 파트타임 대학원으로 전환해 외부 동물병원을 알아보는 실정이다.

건대 동물병원 진료진이었던 모 관계자는 “교수들 간의 알력다툼으로 벌어진 피해를 왜 대학원생과 재학생들이 감내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학생들을 내던진 대학 동물병원이 교육병원(Teaching hospital)으로서의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동물병원장 교체..해법 찾을까

건국대 동물병원이 마비된 3월 1일 병원장 인선도 교체됐다. 김휘율 전 원장의 후임으로는 류영수 건국대 수의대 교수가 선임됐다.

신임 병원장을 중심으로 정상화 논의가 시급하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다.

설령 본부를 다시 설득해 진료배정인원을 늘린다 한들, 70여명에 이르는 수의사들이 모두 정식급여를 받으면서 진료에 참여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정된 진료배정인원을 나누는 과정에서 형평성 문제가 대두되면 갈등이 더욱 심화될 우려가 있다.

임상전담교수 체제에 대한 내부 시각차도 포착된다.

일각에서는 임상전담교수와 봉직수의사에게 들어가는 인건비를 임상과목 대학원생에게 돌리면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병원을 정상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2013년 컨설팅을 거쳐 합의된 임상전담교수 체제가 병원 경영을 개선했고, 경영이 개선된 만큼 인건비도 늘어나고 진료참여인력도 많아질 수 있다’며 기존 체제 유지에 무게를 싣는 입장도 분명하다.

건국대 수의대 관계자는 “병원 근로에 대해 급여를 지급해야 한다는 원칙은 피할 수 없다”면서도 “일부 인력은 병원 진료에 참여하되 시간에 상한을 두는 등 한정된 인건비 재정 속에서 공존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상준 기자 ysj@dailyv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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